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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옵션 보상도 안 해주는데 어느 인재가 벤처기업 오겠나"

그가 처음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귀를 의심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차석 졸업,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 이 정도 스펙이면 당연히 교수의 길을 택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결국 벤처 창업의 문고리를 잡았다.

세계 정상급의 ‘원자현미경’(AFM) 제조업체인 ‘파크시스템스’를 이끌고 있는 박상일(55) 대표. 현재 유명 벤처기업인들의 모임인 ‘벤처리더스클럽’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국내에서 모두 창업에 성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박 대표는 “유학 당시 처음 접한 실리콘밸리의 벤처문화는 신선했다”며 “쉬는 시간에 학생들끼리 자연스레 나눈 이야기가 창업 아이템으로 이어지곤 했다”고 회고했다.

1988년 그는 영주권도 없는 동양인 신분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벤처기업 PSI(Park Scientific Instruments)를 설립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1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97년 1700만 달러를 받고 대기업 계열사에 회사를 넘겼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선 파크시스템스를 설립했다. 지난해 매출 208억원을 기록한 이 회사는 세계 원자현미경 시장 점유율 10%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를 직접 체험한 그의 눈에는 한국의 ‘벤처생태계’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그는 “창조경제의 선봉은 벤처기업이 서야 하고, 벤처가 활성화되려면 실리콘밸리처럼 우수한 인재들이 뛰어들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은 그 반대”라며 “벤처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일 뿐 아니라 잘못된 제도가 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 벤처의 성장을 돕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스톡옵션 제도의 개선’을 첫손에 꼽았다. 우수한 인재를 벤처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스톡옵션인 만큼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대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인재들이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한 굳이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벤처기업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며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위험을 충분히 보상해 줄 정도로 스톡옵션 제도가 매력적이어야 벤처기업이 커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스톡옵션 제도에 대해 세 가지를 지적했다. 우선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회사는 이에 상응하는 ‘주식보상비용’을 회계에 반영해야 한다. 회사의 순이익이 줄어들거나 적자로 반전되기도 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치고 기업가치를 떨어뜨린다. 또 스톡옵션을 행사해 주식을 매수하는 시점에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이며, 스톡옵션의 행사가격을 제한하고 있는 점은 지나친 자율성 침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행사가격을 낮게 해 편법 증여나 상속에 악용하는 것은 대기업에서나 이뤄지는 얘기”라며 “미국처럼 스톡옵션의 행사가격을 회사 이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환우선주’를 부채로 인식하도록 한 회계기준도 벤처 성장의 걸림돌로 지목했다. 벤처캐피털은 보통 상환우선주를 받고 기업에 투자하는데, 이로 인해 투자받은 벤처기업은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부작용을 겪는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국제회계기준(IFRS)을 비상장회사까지 확대 적용해 생기는 문제”라며 “미국에서 잘 작동되는 벤처 제도를 왜 한국에서는 왜곡·변형시켜 성장을 가로막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이와 함께 ‘기술료 제도’도 반드시 손봐야 할 문제로 꼽았다. 기술료 제도는 정부가 기업에 연구개발(R&D) 과제를 준 뒤 성공했을 때 정부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반납하는 제도다. 그는 “R&D에 성공했더라도 그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기업은 손실을 보면서도 기술료를 납부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또 “R&D 과제를 시작하자마자 기술료로 반납해야 할 금액이 채무로 인식되는데, 결국 정부 과제를 하면 할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라고 했다.

그는 “적어도 10년에 3~4개의 벤처는 대기업으로 성장토록 생태계를 혁신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장래는 어둡다”며 “대학 교육, 기업문화, 정부제도 개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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